1. A를 만났다.
A는 그녀의 몸집에 맞지 않을 정도로 아주 큰 캐리어 하나와 백 팩을 매고 있었고, 나는 그녀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오랜만이야.”
라고 환하게 웃는 그녀가 있었다. 캐리어 하나를 넘겨 받았다. 순간 캐리어의 손잡이를 놓칠 만큼, 나를 휘청거리게 만들 만큼 캐리어는 무거웠다.
“ 몇 키로야? “
“ 아슬아슬하게 세이프! 25kg ”
A는 장난스럽게 웃으며 나에게 말했다. 변함없이 A는 항상 웃고 있었다.
가로등이 몇 개 지나고, 캐리어를 들고 있는 손에 조금 땀이 흐를 때쯤, 휴대폰으로 위치를 확인하던 A는 조만간 아, 여기야 라고 외쳤다.
“이 맨션?”
“아니, 왼쪽으로 들어가서 나오는 맨션”
항상 A에게 말했지만 그녀는 어린아이 같이 천진난만한 웃음을 짓는다. 왼쪽으로 들어가는 길을 가르키면서 어린아이처럼 묻는 A의 뒤를 따랐다.
현관을 넘어 들어가자 조그맣게 커브가 있는 계단이 나오고, 열쇠를 짤랑 짤랑 든 A는 201호실 앞에 멈추었다.
달칵
키홀더를 하나 구입해야겠다. 라고 생각을 할 때, 집 현관문이 열리고, A가 뒤돌아서, 말했다.
“어서와, 무지개로! “
2. A는 가끔 술에 취하면 자신을 무지개를 타고 내려온 잔나비라고 소개하였다. 잔나비는 그녀의 띠를 우리말로 말 했으리라. 그렇지만 무지개는 무슨 연관일까? 의문이 들었지만 나는 아무것도 묻지 않고 그냥 웃어보였다.
“내가 이 방을 말이야…”
신발을 벗고 들어간 A의 집은 로프트(다락)이 딸린 꽤나 넓은 원룸이였다. 현관을 지나면 오른쪽에 화장실과 샤워하는 곳, 그리고 바로 방이 나왔는데 현관을 지나니 조금 쾌쾌한 냄새가 코 끝을 때렸다. 하지만 A는 아무렇지 않은 듯, 성큼성큼 방으로 들어갔다. A를 뒤 따라가, 캐리어를 한쪽으로 세워두고, 대충 자리를 맡아서 앉았다. 땀이 송글송글 맺혔다. 4월의 도쿄는 이렇게 더운 것이다. 한국보다 맑은 공기를 자랑하지만 이렇게 무더운 것이다. 이것 저것 보던 A는 로프트 위로 올라가서 거꾸로 나를 내려보며 말했다.
“새 출발이니까, 멋지게 인테리어 할거야. 책상도 놓고, 소파도 놓고 커다란 TV도 놓을 거야.”
“아, 여기에 책상 놓는 게 좋겠네.”
로프트 위에 올라간 A는 딸려 있던 창문을 이리저리 여닫더니, 나가자며 사다리를 타고 내려왔다. A의 얼굴에는 설레임과 신난 감정이 섞여 있었다.
“근데, 현관 들어올 때, 조금 이상한 냄새 나지 않아?”
조심스럽게 입을 열자, A는
“무지개에는 가끔 이렇게 냄새가 나. 괜찮아. 일단 나가자.” 라며 아무렇지도 않게 대답을 하였다. 그리곤 신발을 신는 A를 뒤따라 나도 신발을 신고 나갔다.
무지개란 무엇인가? 아니, A에게 무지개란 무엇인가.
3. 4월의 도쿄는 번덕스럽다. 헤이세이가 끝나는 마지막 날의 도쿄도 변덕스러웠다. 손에 땀을 쥐게 만들던 더위에서 금세 하늘이 어두워 지더니, 비가 오기 시작했다.
아스팔트의 뜨거운 열기에 비가 내려 조금 열기가 시들어 갔다. 역 쪽으로 조금 걷자, 조그만 커피숍이 나왔다.
“지금 밥먹기 애매하니까, 조금 있다가 밥먹자.”
아이스커피를 2개 주문한 A는 커피숍 구석에 자리 잡았다.
금방 주문한 커피가 나올 때까지 침묵이 우리를 감쌌다.
“이제부터 어떡할 거야?”
조심스럽게 말을 꺼내자 A는 순간 다른 사람같이 조금 표정이 일그러졌으나, 금새 다시 어린아이처럼 웃었다.
“글쎄, 조금은 쉬려고.”
A의 표정은 항상 어린아이처럼 천지난만 했다. 웃기도 잘 웃고, 그녀가 갑작스레 도쿄로 온다는 연락을 받았을 때, 한국에서의 그 일이 원인일까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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